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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난센이 부릅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지난 8월 말, 난민인권센터는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감사하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드디어 몇시간전에 난민인정을받고 그리고 영주권받았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이 은혜 꼭 갚고싶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국으로 송금하는방법 좀 알려주세요
 도움많이 받았으니 저두 난센 돕고싶습니다
 그래야 한국에있는 난민분들이 도움받게 되니까요
 꼭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 R 올림


이란 출신 R씨가 한국을 거쳐 멀리 캐나다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후에 그 소식을 전해 온 것입니다.

(R씨가 캐나다에서 보내 온 사진입니다. 피곤하고 초췌하던 R씨가 캐나다에서 난민인정을 받으시더니 신수가 훤해지셨어요~ :) )


2009년 반정부 시위, 그리고....

지난 2010년 4월, 이란에서 이메일 한통이 도착했습니다. 조금은 어눌하지만 장문의 한국어로 된 이메일이었습니다. 자신의 계정으로 이메일을 보낼 경우 당국으로부터 감시를 받을 것을 우려하여 친구의 메일계정을 통해 보낸다며 시작된 이 이메일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R씨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왔지만 공장의 부도와 부모님의 수술비 등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오히려 빚을 져야만 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로 지내던 중, 2009년 6월, 이란 대사관 앞에서 반정부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당시 이란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 해주세요~)

참고자료 : 2009년 이란 반정부 민주화 시위 관련 기사
   1. 한겨레, 2009. 6. 16. <이란 유혈진압 최소 7명 숨져>
   2. 한겨레, 2009. 6. 21. <이란 시위대 사망자 속출>


그런데 문제는 이 시위에 참가했던 R씨의 신원이 이란 대사관 측에 드러난 것입니다. 대사관과 끈이 닿아 있는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은 며칠 뒤 집에 있던 R씨는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에게 단속된 뒤 한국에서 추방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답답한데, 더 큰 문제는!

R씨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사복의 정보요원들에게 체포되어 며칠 동안 감금된 채 심문과 폭행을 당했고, 고문까지 당했습니다.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끝에 풀려났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풀려난 뒤에도 정보요원들의 감시와 협박 속에 지내야했고, 당국의 방해로 취업을 하지도 못해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다시 이란을 탈출할 생각을 했고, 저희 난센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두 달 넘게 이메일을 통해 상담을 진행한 끝에 R씨는 한국행을 결정하였고, 원래 신분증으로는 출국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브로커를 통해 가짜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그리고....


난민신청... 하.지.만.

R씨로부터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도착하고, 난민신청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정식으로 면담을 하고, 박해의 원인과 경험에 대해 정리 하고, 이란의 반정부 시위의 전개 과정과 인권침해 사례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문서와 자료들을 번역하고 정리했습니다. 
특히 한국에 최초 입국 당시에는 난민이 아니었지만, 한국에서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 난민으로 인정될 사유가 생겼다는 점에서 '현지 체제 중 난민(Refugee sur place)'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 위조 여권을 통해 재입국했지만 난민신청자로서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점 등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난센은 R씨와 함께 난민신청을 접수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R씨가 가짜 여권으로 입국하였기 때문에 신원확인이 될 때까지 난민신청을 받아줄 수 없고, 위법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구금을 시킬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결국 난민신청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고, R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캐나다, 한국 & 이란

또다시 구금되었다가 송환이 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생길 것을 우려한 R씨는 결국 고민 끝에 캐나다에 가서 다시 난민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저희는  R씨를 떠나 보내야 했죠.

그리고 1년 만에 전해져 온 소식, 캐나다에서 난민신청을 했고, 자신이 캐나다까지 오게 된 과정과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려다가 포기한 이유를 설명해줄 문서가 필요하다는 요청이었습니다.

만세!!!
이런 것 쯤이야 당연히 해줘야죠!

저희는 그동안 벼르고 벼른 내용들을 정리해서 캐나다 이민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달 여가 지난 뒤 드디어 난민인정을 받았다는 메일이 도착했던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한편에서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진작 한국 정부가 난민신청을 받아주었더라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난민인정을 해주었더라면, 
캐나다에 갔더니 단박에 난민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어야 했고, 마음을 졸여야 했던 것일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R씨의 난민인정 소식이 있기 3개월 전, R씨와 유사한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던 다른 분의 소식이 언론에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참고자료 : 동아일보, 2011. 5. 6, <'Free Iran 시위' 이란인 난민인정 받았다>


반정부 시위를 했던 이란분이 난민신청을 했다가 거부된 후 행정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비록 아직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겠지만) 이렇게 난민인정이 될 것을 우리나라 정부는 왜 이렇게 난민인정에 인색한 것일까요?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의 소식을 여러분께 전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이 착잡 합니다.

이 마음을 달래보자고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한 소절을 불러봅니다.



ps. 참, 그래서 R 씨에게 저희 후원금 보내줄 계좌를 불러 줬냐구요? 하하하.
      저희 난센은 내부 규정상 저희가 도움을 준 난민들로부터 어떤 금전적 보상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R씨의 마음만 소중하게 받았고요. 대신 캐나다에 있는 난민단체들을 통해 그곳에서 지내는 난민분들을 도와주시라고 소개해드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