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한국일보 규탄한다!
2월 4일자 한국일보 "살인전과자도 있는데...외국인보호소 '빗장' 그냥 풀릴 판"이라는 기사(이하 '기사')는 미등록이주민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바탕한 혐오를 담고 있어 시급히 바로 잡힐 필요가 있다. 기사는 "5월 말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외국인보호소가 일시 폐지되고 보호 중인 외국인들을 일괄 석방하는 '입법 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면서 "18개월 이상 장기보호 외국인은 최근 5년간 152명으로, 이들 중 32.9%(50명)가 형사범들"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법무부가 제공한 흉악범죄자 사례를 자세히 언급하며 이대로 가다가는 이들이 모두 풀려나 우리 사회가 매우 큰 위험에 빠질 것처럼 걱정한다.
기사에 나온 바대로 5월 말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출입국관리법 관련 조항이 즉시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현행 외국인보호소는 우리 헌법에 어긋나는 위헌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3월(기사는 '2022년'으로 잘못표기) 외국인보호소 관련 출입국관리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 제도가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적법절차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그 이유를 명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지 않고 구금을 계속했다.
기사 내용은 마치 국회의 잘못으로 법안이 폐기될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늦게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은 법무부가 처음부터 의도했거나, 자초한 상황이다. 정부는 2024. 10. 7. 법안을 발의하기까지 개선입법에 관한 공청회나 토론회 등 어떠한 논의의 장도 열지 않았다. 심지어 발의까지 관계 부처 의견조회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함께 논의해야 할 법원이나 인권위 등에서도 논의를 준비할 수 없었다. 그간 국회에서 박주민 의원을 포함한 여야 다양한 의원들의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법무부는 반대 의견을 개진했을 뿐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여러 차례 논의를 요청했으나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법무부는 지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논의에 참여하지 않다가, 현행법이 폐기되기까지 7개월여 남은 시점에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의 법안을 내 놓았다. 법무부가 제안한 안은 외국인을 재판도 없이 36개월까지 가둘 수 있으며, 그마저도 무한정 재구금할 수 있도록 한다. 국회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이주구금의 한도를 법에서 정한 국가 중 가장 길게 정한 경우가 18개월이다. 그간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된 관련 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최소한 법원이 구금 연장을 검토하도록 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객관적인 제3자의 통제 절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신구금 영장과 유사한 법원 제도를 활용하는 것 이외의 대안을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법무부 내부의 ‘외국인 보호 위원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심사하면 그것이 ‘객관적인 심사’ 라는 획기적인 법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시한 직전에 법안을 제안하면서, 심지어 그 내용이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기괴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논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법 개정이 제 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을 비판하려 했다면 기사는 법무부의 이런 행태에 대해서 먼저 지적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법의 통과가 더 늦어지게 되면 기사가 걱정한 대로 우리 사회는 정말 더욱 위험해지게 되는 걸까? 외국인보호소는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을 형사처벌하는 기관이 아니다. 외국인에 대한 형사처벌 절차는 내국인과 동일하며, 외국인의 형사처벌도 교정시설이 담당한다. 만약 전과자가 외국인보호소에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미 다 종결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사람에게 남은 것은 출국절차일 뿐, 특별히 외국인보호소에 대기시킬 이유가 없다. ‘외국인보호소에 전과자도 있다’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기사가 통과를 촉구하는 법안과 범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법안은 출입국관리법이며, 외국인보호소는 교정시설이 아니라 출입국 집행 기관일 뿐이다. 이 기관은 범죄 예방이나 교정의 기능이 없으며, 법적으로 그러한 고려를 할 수도 없다.
법무부는 이 법의 취지나 기능과는 아무 상관 없는 몇몇 사람들의 ‘범죄 경력’을 운운하며 이주민에 대한 낙인찍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행법상 형사처벌이 이미 모두 끝난 사람에 대한 추가적인 자유권 제한의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출입국관리법이 아니라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이 제정된다고 하여도 위헌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전과자에게 더 불이익을 주지 못하니 큰일이 났다’는 것이 기사의 취지라면, 이를 위한 헌법 개정과 법률 제정을 논의하여야 할 일이지 애먼 출입국관리법에 대고 화풀이를 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내용의 보도는 "이주노동자 등을 잠재적 범죄자 또는 전염병 원인 제공자 등으로 몰아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헌법재판소도 이 법에 대한 결정문에서 "대한민국에서 범죄를 범한 외국인이라고 하여 그가 보호해제되면 도주하거나 다시 범죄를 범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한 바 있다. 현재 출입국관리법 개정이 논의되는 이유는 그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제퇴거를 집행하는 데에 ‘무한정 구금하여 괴롭히기’ 이외에 아무런 제도를 마련해놓지 않았던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고안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외국인 혐오를 불러일으켜 곤경을 타파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한국일보 기사는 2018년 제주에 예멘난민들이 도착했을 때 보였던 우리사회의 광기어린 공포를 연상시킨다. 500여명의 예멘 난민이 입국하자 당시 언론들은 난민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여론을 여과없이 보도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당시 난민혐오를 조장하던 세력들이 경고했던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지난 과오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는지 이번 기사에서도 법무부가 주장하는 바를 여과없이 보도하면서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한 근거없는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를 당장 삭제하고 이런 기사가 그대로 보도된 것에 대해 편집부 명의로 사과해야 한다. 유엔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버젓이 쓴 것도 사과문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2025년 2월 5일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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