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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기고]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 희망 이야기 1편

 

대부분의 난민소송은 변호사 조력을 받지 못한 채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고, 많은 경우 충분한 주장과 증명할 기회를 놓친 채 법원에서 공정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센은 변호사 조력 없이 나홀로 난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을 충실히 서포트 해보고자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상아 자원활동가님과 한나현 자원활동가님이 당사자 분의 난민소송을 동행하며 경험하고 느낀 점을 후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후기는 순차적으로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어려운 과정을 협력하여 진행하고 계신 데오(가명)님과 두 자원활동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1편(영문) : https://nancen.org/2014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2편 : https://nancen.org/2023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2편(영문) : https://nancen.org/2024

나홀로 소송 난민 데오와의 첫 만남

2020년 1월의 어느 수요일 오후, 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던 난센 사무실에 부룬디에서 온 난민 데오(가명)가 찾아왔다. 그가 신청한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소송 재판이 며칠 밖에 남지 않은 긴급한 상황이었다. 데오는 오랫동안 난민신청절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해 재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른 채 혼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침내 난센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그가 힘겹게 찾아온 난센. 이곳에서 그가 다급히 필요한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우선 그와 상담을 하면서 그의 상황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당장 데오의 소송을 맡을 수 있는 변호사를 알아보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변호사 연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 그는 담담하게 “꼭 변호사가 필요한가요? 저는 제 상황을 직접 법원에 설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난센에 수요일마다 상주하는 자원활동가 나현님과 나는 부룬디 국가 정황 리서치를 통해 데오가 본국으로 돌아갈 시 받게 될 박해의 심각성을 깨닫고 홀로 선 데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그의 소송재판 준비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14일의 분투, 나홀로 난민소송을 준비하다

재판 날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4일이었다. 데오의 본인소송을 지원하면서 알게 된 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들이 참 많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투두(To-do) 리스트를 요약하자면, (1) 증거자료들을 번역하고 (2) 국가정황(COI)보고서를 리서치하고 (3) COI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진술서 및 준비서면을 정리하여 (4) 모든 자료가 일관성이 있는지 검토한 후 하나의 문서로 만들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나현님과 내가 소송 준비 과정을 한 단계씩 모두 해내기 위해서는 난센 활동가들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했다. 문뜩 데오처럼 혼자서 소송을 준비하는 난민들이 이 모든 것을 홀로 해내야 하는 현실이 불공정한 건 아닌지, 대한민국 난민제도에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처음 데오의 소송 준비를 지원하기로 결심한 나현님과 내가 그랬듯이, 난민들은 소송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한다. 난민이 홀로 준비하는 소송에서 본인의 상황을 분명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 결과, 아무리 강력한 난민성을 지닌 난민이어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데오와 함께 소송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가 진술한 상황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난민이 진술한 모든 상황은 증거자료 혹은 COI보고서 등 객관적인 근거로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 난민협약은 박해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우려 (well-founded fear)”가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민의 박해 우려를 증명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데오의 경우, 부룬디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청년으로서 박해를 우려하고 있다. 그의 진술에 의하면, 부룬디에서는 임보네라쿠레 (Imbonerakure)라는 친정부 무장단체가 2015년 4월 부룬디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이후로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자들을 무작위로 고문하고 살해하고 있다. 여기서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자”는 반정부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도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이들은 그러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건강한 청년이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정부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보네라쿠레는 그러한 청년들을 심문하고 살해하고 있다. 데오가 부룬디에 살고 있던 당시, 그는 아무런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대표적 지역인 부줌부라(Bujumbura)의 거주자였다. 단지 그 이유 하나 만으로 2015년 사태 이후 임보네라쿠레는 데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세 번이나 방문하여 그를 심문하고 마지막 방문 때는 그가 곧 박해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 계기로 데오는 본국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부룬디 국가 정황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그가 진술한 박해 우려가 난민협약이 말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박해 우려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국제 인권 보고서는 임보네라쿠레의 박해 행위를 기록하고 있고 이에 국제사회는 부룬디 난민들에 대한 국제적 보호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데오는 박해 우려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데오가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유는 3회의 구두 위협 이외에 신체적 위협을 받은 바 없고 주목받을 만한 활동을 하지 않아 중대한 박해 표적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언급했듯이, 국제 보고서들에 의하면 반정부 정치적 활동에 주요 역할을 한 사람만이 정부의 주목대상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이면 충분히 정부의 박해 대상이 되며 그들은 임보네라쿠레의 박해 위협에 하루하루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데오에게 난민불인정사유결정을 통고한 대한민국 출입국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난민 측에서 박해 우려에 대한 증거물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증거물을 내야 하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해 데오는 어느 날 상담 중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제가 집에서 비논리적인 이유로 박해자들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았던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 집에 CCTV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들이 방문한 당시 제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참 막막했다. 어떻게 하면 데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데오의 박해 우려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그가 제출한 증거자료들을 꼼꼼히 번역하고 준비서면에 증거자료들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COI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정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번 겨울의 최대 한파 기간 동안 데오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는 강추위를 견디며 그의 거주공간과 일터가 위치한 평택에서 난센 사무실까지 무슨 생각으로 오고 갔을까? 추운 겨울 먼 길을 오가는 데오였지만, 그의 표정은 나날이 더 밝아졌다. 데오가 말하기를, 처음에는 앞이 보이지 않아 자포자기한 상태로 오갔던 평택과 난센 사무실 사이의 길은 난센과의 만남을 통해 점점 희망의 길로 변했다. 그는 몇 차례 진행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나현님과 제가 작성한 진술서를 읽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통해 본인이 이해받는 것 같다고 했다. 부족한 도움의 손길이지만, 데오가 난센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며 재판 결과와 상관 없이 이 순간 참 행복하다고 말해주었을 때, 난센 자원활동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데오와 함께한 지난 14일 동안 한파로 인해 밖은 매서운 바람뿐이었지만, 난센 사무실 안에서는 희망이 주는 따스함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글: 자원활동가 이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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