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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Data on Refugees

[FMR] "잊혀지고 방치된 난민들: 일본의 도호쿠 대지진 이후 난민들의 상황"

Forgotten and Unattended: refugees in post-earthquake Japan
잊혀지고 방치된 난민들: 일본의 도호쿠 대지진 이후 난민들의 상황

글: Katsunori Koike(카츠노리 코이케)
출처 : Forced Migration Review, Issue 38, 2011, pp.46-47,
원본(PDF)




일본은 세계최고의 재난 대비 방안 국가이면서도,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2011년 지진 후에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은 지진 후 더욱 엄격해진 이동의 자유 제한, 더 악화된 빈곤, 그리고 필수적 정보의 부족 등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감당해야만 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을 덥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거나 또는 실종되었고 25만 이상의 빌딩들이 피해를 입거나 파괴되었다. 440만 이상의 가구에 전기가 끊겼고 230만 가구에 식수 공급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막대한 구호자금과 기부금이 지원되었지만 특정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너무나도 막대했고, 특히 또다른 지진이나 손상된 원자력 발전소로 인해 방사능이 유출될 것을 두려워 했던 외국인들은 일본을 떠나기에 바빴다. 일본의 출입국사무소(Immigration Bureau)는 다른 나라로 출국했다가 상황이 나아졌을 때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재입국허가서를 요청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일본의 현행 난민 시스템은 난민신청자에게는 재입국허가서를 발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난민신청자들은 본국에서의 박해와 일본에서의 자연재앙으로 인한 위험요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많은 난민들과 난민 신청자들이 일본을 떠났지만 일본에 남기로 한 사람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불충분한 지원으로 인해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이들처럼 돌아갈 곳이 없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에 갇혀있다. 우리는 감옥의 죄수들과 같다.
우리는 방치되어있으며 잊혀진 듯 하다. 그 누구도 이 위기에서 우리가 처한 어려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도와주지도 않는다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신청자).



피해가 가장 심한 도호쿠 지역에 거주하던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의 수는 동경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부분의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은 동경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동경지역에 거주중이던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 역시 도호쿠 지역에 비해서는 적은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난민지원을 담당하는 JAR(the Japan Association for Refugees; 일본난민협회)은 지진이 일어나고 며칠 후 난민커뮤니티와 그들이 거주하는 집을 방문하며 지원을 시작했다. JAR은 각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이 안전한지를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상담 및 최근 상황에 대한 정보 전달, 그리고 쌀, 밀가루, 식용유, 파스타, 초콜렛, 식료품 캔, 얼굴용 마스크, 물, 위생용품 등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했다. 이러한 방문을 통해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에게 있어서 재난 후 가장 큰 고통이 되었던 세가지 점이 드러났다.



일본은 1951년 난민협약과 1967년 난민의정서에 서명하였고, 미국에 이어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두 번째로 많은 재정지원을 하고 있지만, 매우 적은 수의 난민만 받아들이고 있다.
난민신청 거부확률은 약 95%인데 이는 선진국들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거부율이다. 2010년 일본에서의 난민신청은 1,906건이었지만 그 중 2%에 해당하는 39명만이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대부분의 난민은 버마(미얀마) 출신으로 2010년의 인정자 39명중 37명이 버마(미얀마)인이었다. 그 외 터키의 쿠르드족, 스리랑카, 중동지역 그리고 아프리카지역에서 온 난민들이 일본에서 난민신청을 했다.
난민지위 결정이 나기까지는 보통 수년이 걸릴 수도 있으며, 이 수년 동안 난민신청자들의 사회 공공서비스로의 접근은 제한되어 있다.



첫번째 문제는 미등록 난민신청자들의 이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위기 상황에서 이들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먼저 일본의 현행 난민보호 제도 하에서는 3개월 단위로 연장되는 임시구금해제(Provisional Release Status; PR)를 받는 것 이외에 체류허가를 받지 못한 난민신청자들은 구금이 된다.1) 
임시구금해제를 받는 경우에는 이동이 제한되며, 허가된 지역 외의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매번 출입국사무소의 허가서를 지참해야 한다. 지진으로 인한 혼란상태가 발생했을 때,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임시구금해제 상태의 난민신청자들을 위해 제공한 것은 “재난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것“ 이라는 비공식적이고 모호한 의미의 코멘트 뿐이었다.2)  실제로 임시구금해제 상태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은 여전히 출입국 사무소에 정기적으로 출석해야 했으며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긴급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허가구역을 떠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구금상태의 난민신청자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도호쿠 지역에서 약 150km 정도 떨어진)동일본 외국인구금시설에 구금된 사람들에 의하면, 지진일 일어나는 동안 출입국사무소의 직원들은 구금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으며, 그저 걱정할 것 없고 “밖으로 나가려면 담당자로 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고 한다. 겁에 질린 구금자들이 패닉에 빠져 문을 두드리고 컵을 깨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으며, 지진 다음 날 아침에서야 출입국사무소는 잠겨진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출입국사무소에서는 혼란 시 파손된 기물에 대해 구금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국가중에 하나기 때문에 지진후의 대비책에 있어서는 세계최고의 수준이다. 1960년 이후 매년 1923년 동경대지진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9월 1일을 재난 방지날로 지정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사전 지진경고 시스템은 세계에서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3)  하지만 구금시설에는 그 어떤 재난 또는 피난을 위한 장비와 교육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번째 문제는 재난 이후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은 정부의 부족한 지원, 언어 장벽, 경제 상황 등으로 인해 극도의 빈곤 속에 살고 있다. 재난 후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와 전기부족으로 인해 보통 하루에 3시간 정도 공장과 레스토랑등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곳들은 대부분의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이 일하고 있는 곳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직장을 잃었고, 이에 따라 직접적인 수입도 자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재난 후 대부분의 지원금들은 재난관련 분야에 집중되었고 따라서 난민관련NGO들이 난민들을 위한 지원금을 확보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세번째 문제는 대부분의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은 지진과 방사능에 관한 믿을만한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 대부분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지역이나 원자력발전소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 왔고, 따라서 이러한 정보가 가장 부족한 사람들이다. 수시로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하고 일본어를 할 줄 알며 자신들의 커뮤니티가 존재하느냐의 여부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그러나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은 같은 인종 또는 국가에서 온 난민들 중 이전에 살았던 지역 또는 국가에서 본인과 적대적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종종 자신과 같은 인종이나 같은 국가에서 온 다른 난민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한다. 인터넷에 접속을 했다 하더라도 일본어 실력이 부족할 경우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은 외국 언론들을 통해 일본의 지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외국 언론들은 일본 정부나 언론보다 방사능 노출 위험을 더 심각하게 보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의 두려움은 더욱 더 심해졌고 그들의 출신 국가의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은 기억과 트라우마와 합쳐져 일본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한 쿠르드 족 가족의 상황은 이들이 처한 심각한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6명의 가족은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지내오며, 두 명의 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나기까지 하는 등 일본에 그들의 뿌리를 내렸다. 그들의 난민신청은 거부당했지만 법무부로부터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가 허가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던 중 지진이 발생했다. 재난의 후유증과 불확실한 상황으로 인해 그들은 굉장히 힘든 선택을 해야만 했다. 방사능 노출시 아이들의 경우 어른들 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아이들을 생각해서 엄마와 아이들만 터키로 돌아가기로 하고 아빠는 일본에 남기로 했다. 이 가족에게는 체류허가가 없었으며 가족모두가 임시구금해제(PR) 상태였다. 따라서 엄마와 아이들은 추방당하는 형식으로 일본을 떠났으며 최소 5년간 다신 일본으로 돌아올 수 없다.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인해 가족들은 일본에서 다같이 함께 지내는 대신 5년 이상 떨어져 살게 된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 더 소외되고 더 취약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출입국 사무소는 다른 카테고리의 외국인들을 대하느라 공포에 질린 난민들과 난민신청자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일본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는 둘째치고 난민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채 이들을 홀로 남겨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무지와는 반대로 일부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은 그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많은 수의 난민들이 스스로 자원해서 재난 희생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버마에서 온 난민 그룹은 집을 잃은 300명의 사람들을 위해 카레를 요리해 제공했다. 동일본 외국인구금시설의 구금자들은 적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아 도호쿠 지역으로 보냈고, 버마 난민 커뮤니티에서는 50만 엔(약 $6,500, \7,200,000)의 성금을 모금했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재난으로 파괴된 지역을 방문하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우간다 출신의 한 난민신청자가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Rikuzentakata시의 복구현장을 돕고 있다. ⓒJapan Association for Refugees>


우간다에서 온 한 난민은

“이 힘든 시기는 내 생명을 구해준 일본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난민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가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그룹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 누구도 방치되지 않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




<각주>
1)  이 임시구금해제는 보통 버마인들에게는 3개월, 다른 국가에서 온 난민신청자들 에게는 1개월이다. 일본에서 난민신청절차를 보통 2년이 걸리는데 이 상태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은 난민지위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까지 임시구금해제 기간을 정기적으로 연장해야만 한다.
2)   JAR과 다른 NGO 활동가 및 몇몇 개인들과의 전화통화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3)   www.time.com/time/world/article/0,8599,2058390,00.html



글쓴이 Katsunori Koike 는 2011년 5월까지 일본난민협회 (www.refugee.or.jp/en/) 의 법률담당 직원이었고 옥스포드 대학 Refugee Studies Centre 에서 MSc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으며 UNHCR 케냐의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개인 역량에 의해 쓰여졌으며 UNHCR 이나 일본난민협회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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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강효정 (난민인권센터 자원봉사자)
감수 : 최원근 (난민인권센터 사업팀장), 정하영(난민인권센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