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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가을 활동가 이야기






이슬


나뭇잎에 물이 들기 시작하더니 11월입니다. 11월이 오면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본국으로 강제송환 될 뻔했던 H님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 된 지 1년이 되는 달이거든요. 모두에게 한 시간은 60분이고 하루는 24시간이라지만 저에게는 지난 1년 중 유난히 긴 하루도, 유난히 빨리 지나가는 하루도 있었는데 H님에게는 어땠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갇혀 보낸 1년이란 시간은 어떤 것일까요? 강제송환과 구금처분을 내린 쪽에서는 다른 나라로 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돌아가는 것보다 그저 갇혀있는 게 나을만한 상황이란 건 어떤 것일까 1년이라는 시간이 저에게 가볍게 넘어갈 무게일 수는 없어서, 여러 번 가늠해 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강제송환 와중에 있었던 조사에서 어떤 질문이 오갔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고, 강제송환의 이유가 그 두루 뭉술한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 이것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구금되어 있어야 할 이유도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한지 1년이 되었네요. 거짓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 겨울이 오기전에, 조금 길었던 '조금'이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노공




 

하늘에서 햄버거가 쏟아지는 애니메이션처럼 일감이 쏟아지는 사무국의 한 주를 보내고^^, 얼마 전 성남서울공항에서 열린 아덱스(ADEX 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 퍼블릭데이에 대중캠페인팀으로 참여하였어요. 2년에 한 번 씩 열리는 이 행사는 일반인들에게 서울에어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전투기들의 곡예를 구경하러 아침부터 그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수만 명의 유료 관람객이 찾아오는 초대형 행사인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참여연대, 전쟁없는세상, 피스모모등 여러 단체에서 대중캠페인을 진행하였어요. 분홍색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손수 만든 분홍 망토를 두르고 무기거래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다녔어요. 호기심으로 유인물을 받는 사람들부터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까지 올해도 극과 극의 반응을 경험했습니다. 엄청난 굉음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킬 때 마다, 사람들의 눈길은 파란 가을하늘에 떠있는 첨단 전투기에 고정되었구요. 아이들은 그 소리에 놀라 귀를 막고 있었지만 손을 잡고 있는 어른들의 손가락은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향하고 있었어요. 저 전투기 소리가 날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경꾼이 될 수 없음을... 어떻게 전달해야할까... 2년 전 보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런 행사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며, 다음 아덱스 저항행동엔 난센과 함께 더 많은 분들과 참여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소련 


0. 바라고 바라마지 않던 난센에서의 활동이 어느덧 3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간 긴장도, 실수도, 만남도, 기쁨도, 슬픔도, 보람도 많았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역시 ‘스펙타클’이라 하겠습니다. 


1. 길지 않은 시간 동많은 난민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미약하나마 조력을 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반으로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그런 책상 위 케이스 파일 하나나 늘어나며 책임감+부담감이 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사소한 한마디,지(無知) 비롯한 성급한 판단이 그 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긴장감이 있어더 신중한 판단을 내리고 제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죠. 


2. 얼마 전 방문하신 A님은 교환학생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한국도, 한국 사람들도 잘 맞아서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국적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해를 피해 국적국을 떠나야하는 순간 A님은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학생일 때 경험한 한국과, 난민신청자로서 느끼는 한국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1년 만에 한국만 낯선 나라가 되어버렸네요. 



허니


가을이 저물어 갑니다. 새로 오신 활동가 분들, 복귀하신 김성인 국장님, 그리고 난민인권강좌팀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사무실은 오랜만에 복작복작 에너지가 넘쳐서 좋았습니다. 사무실 한쪽 구석탱이에 쭈구리로 앉아서 여전히 더듬더듬 영어로 전화를 받고, 자꾸 분노하고, 실없는 소리하고, 맞장구 치고, 노공이 챙겨주시는 간식을 냠냠냠 먹으며 가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린이 업무일지 쓰시는 것을 공유해 주셔서 하루에 내가 무슨일을 하는지, 무슨일을 해야하는지를 틈틈히 적으며 하다보니 예전보다 놓치고 깜박하는 것도 좀 줄고,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오늘을 보냈는지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서 삶의 질이 한층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전에 동천에 있을 때 마음 많이 써서 조력했는데 대법원까지 패소하시고 더 이상 도와드리기 어렵게 된 난민 분이 우연히 난센을 찾아 오셨어요-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시고 한국에서 재신청을 하셨더라구요. 끔찍한 박해의 경험이 있던 분이신데, 본국의 상황이 개선된 것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었다 하였습니다. 요즘 유독 재신청을 하시고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아지셨다는걸 피부로 느낍니다. 예전에는 재신청을 하셨다고 하면 소극적으로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엄격한 색안경을 끼고 대했던 것 같은데.. 요즘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몇 줄짜리 난민불인정 사유서를 받고, 아무 사유도 적히지 않은 이의신청기각결정통지서를 가지고, 법원으로 비싼 소송비용을 내며 판단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력도 없이 쉽게 쉽게 끝나버린 소송 과정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정부와 법원에서 판단을 받아 보셨으니 더 이상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다. 떠나시라" 과연 어느 누가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최근 재신청을 하러 간 분들이 재신청사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아무런 물음이나 조사 없이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비자를 빼앗기고 "합법적 체류기간이 지난 다음 날에 오라. 오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라는 협박(?)을 듣고 가면, 불법체류자라고 출국명령을 받고 재신청 심사 기간 동안 출국기한을 유예하는 형태로 체류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난민재신청자라 하면 바로 "남용적 신청자"로 규정하고 이런 식의 체류관리를 한다고 하네요. 자칫하다가 체류연장을 놓치면 구금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재신청자가 많아지다보니 출입국 측에서 출국을 유도하기 위한(?) 궁여지책(?) 꼼수(?)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이렇게 출국명령의 기한을 유예하는 것이, 또는 구금시설에 구금된 상태가 난민법에서 '난민신청자는 절차가 확정될 때까지 체류할 수 있다'고 규정한 "체류"라고 볼 수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떠나지 못하고, 심사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에서 불안정한 체류상태로 체류하는 기간도 길어지고, 그 사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과정 중에 태어난 아이의 ID에 무국적자(STATELESS)라는 딱지가 붙어 있던 것이 자꾸만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