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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리얼>



마이너의 유쾌한 반란 <슬램덩크>


"왼손은 거들 뿐…"


농구 소재 만화 <슬램덩크>를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만화 연재 내내 사이가 좋지 않던 서태웅과 강백호는 최강팀 산왕과의 접전을 진행하면서 종료 직전 눈빛이 마주친다. 레이업슛을 시도하던 북산 최고의 스타 서태웅에게는 이미 산왕의 밀착수비가 집중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강백호에 대한 마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서태웅이 눈빛을 보내자 강백호가 담담하게 했던 한마디가 "왼손은 거들 뿐…"이었다.


강백호의 미들슛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바로 저 그림이다. 하지만 여기서 "북산은 이 승리를 계기로 탄력을 받아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슬램덩크>는 역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최강 산왕에게 이겼지만 "이후 거짓말처럼 3연패를 당하면서" 스포츠만화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것 또한 인상적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이겼는지 졌는지의 여부는 기본이지만, <슬램덩크>는 그를 초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끈끈해지는 과정을 다룬다. 부상으로 인해 좌절하던 정대만이 농구장을 부수려 하다가 안선생 앞에서 무너지면서 눈물을 흘리며 "농구가 하고 싶다"고 통곡을 하는 장면, "당신에게 있어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 국가대표 시절이었나?"라고 묻던 강백호에게 담담하게 "(학생들과 함께 농구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묻는 안선생 등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결국 승부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화합과 융화라는 것이다.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등 개성이 하나같이 강한 학생들을 묵묵히 끌고 가는 안선생, 농구가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매니저 소연에게 반해 농구부에 입단했던 강백호가 점점 농구를 알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 등은 휴먼드라마로서의 <슬램덩크>를 만들어나간다. 북산팀을 그저 그런 실력을 가진 팀으로 설정한 것 역시,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농구를 소재로 선택한 것 역시 톡톡한 역할을 한다. 마이너의 유쾌한 반란이었다. 그래서 강백호는 늘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다. "난 천재니깐!" 


다케히코 이노우에, 더 낮은 곳으로 <리얼>


 

<리얼> 역시 농구만화다. 하지만 보다 더욱 이색적이다. 장애인들의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그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슬램덩크>에는 단순한 농구 이야기에서 벗어나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대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리얼>도 마찬가지다. 휠체어 농구를 하게 된 개개인의 이야기가 농구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 어둡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현실이니까. 그래서인지 <리얼>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는 이 대사가 아닐까 한다. 


"승리 따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 '장애가 있는데도,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 진지한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차피 '장애인' 스포츠에 지나지 않아."


처음 휠체어 농구를 접하고, 농구를 했던 시절의 승부근성이 발동돼 과할 정도로 의욕을 보이는 주인공에게 동료가 하는 말이다. 짧은 한 마디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담겨 있는 냉소의 한 마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결국 휠체어 농구라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상호모순적이지만, 이렇듯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뒤섞여 귓가에 맴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촉망받던 농구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고 장애를 '굴욕'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자신이 저지른 오토바이 사고 때문에 장애인이 된 소녀를 보면서 괴로워하는 사람, 피아노를 강요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육상선수가 돼 열심히 노력했지만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사람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드라마다. 하지만 새삼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개개인마다 기구한 드라마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니까.


요지는 이들이 어떻게 팀워크를 다지면서 각자의 상처와 절망을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휠체어 농구는 그래서 선택된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황순원 선생의 <별>에서 못 생긴 누이를 미워하던 '나'가 막상 누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한걸음 한걸음 성장해나갔듯이, 상처와 절망을 딛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비장애인들의 편견 또한 우리에게는 묵직한 경고로 남는다. "장애가 있는데도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라는 것, 그것은 장애인을 뭔가 '특별한 존재'로 보고 반면교사를 위한 존재 이상 이하로 생각하지 않는 풍토에 대한 경종일 것이다.


결국 <리얼>은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던진 묵직한 직구같은 만화다. <슬램덩크>는 변화구라고 할 수 있다. 두 만화는 하고자 하는 말은 비슷하다. 다만 <슬램덩크>는 강백호라는 대책없을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를 내세워 밝고 경쾌하게 그려나갔고, <리얼>은 장애인들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마음과 고민, 걱정들을 송두리째 담아 거침없이 던진다. 각자 상처를 가지고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떻게 뭉쳐 앞으로 나아가는지,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여전히 희망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으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사형이 확실시되는 조직폭력배 친구에게 검사인 친구는 공수특전사 대원으로서 5.18 진압에 참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뒤늦게 고백한다. 조직폭력배 친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참여해 아끼던 후배를 잃었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 검사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죄책감에 자신이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사실을 숨겨왔던 것이다. 그는 아프게 말했다. "너는 그동안 나한테 속아왔어."


하지만 조직폭력배 친구는 잠깐의 충격을 딛고 검사 친구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어떻게라는 사실이야. 넌 할만큼 했어." 그말과 함께 부탁했다. 자신에 대한 사형 구형을 검사 친구가 직접 해주기를. 적어도 너처럼 한 길만 바라보고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의 구형이라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우고 살아가는 방법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딛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딛고 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답을 제시했다. 열정을 기울일 수 있는 소재와 그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의 화합과 융화다. 그래서 <슬램덩크>에서 북산의 센터이자 주장이었던 채치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서로 각별히 친하지도 않고

너희들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팀은 최고다."





(박형준 활동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