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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기고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난민


아래 글은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이 월간 참여사회 2015년 11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1371256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난민

 

글.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

 

# 장면 1.
“아니요, 오지 마세요. 한국보다 난민이 살기에 더 좋은 나라를 찾아보시고 정말 갈 나라가 없을 때, 마지막 선택으로 한국에 오세요.” 한국에 난민신청 하러 오겠다며 조력을 요청하는 국제전화를 받을 때마다 하는 말이다. 나는 난민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한국에 오지 말도록 권한다. 한국이 난민들에게 피난처로서 적합한 나라인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난민의 현실


인간이면 누구나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꿈꾼다. 이러한 삶은 자신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으며 실현해 나간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능력이 없거나, 오히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주체가 되어 자국민을 박해하는 나라들이 있다. 일명 ‘실패한 국가’다.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때 인간은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보호를 요청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난민이다. 현행 국민국가 체계에선 국민을 보호할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게 있기 때문에 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탈출한 난민을 국제사회가 대신 보호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난민협약이다.


한국은 1992년에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2015년 8월 말 기준으로 21년 동안 난민 신청자는 1만 2,752명이며 난민 인정자는 522명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 인정률이 38%인데 비해 4%에 불과한 한국의 통계는 난민을 위한 한국의 문이 사실상 닫혀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난민 신청 후 3~4년이나 걸리는 심사기간 동안 한국 정부는 적절한 생존수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난민 신청 후 6개월 동안은 정부가 생계비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에도 2,896명이 난민 신청을 했지만 예산은 약 3억 4,000만 원 뿐이어서, 38만 2,200원씩 150명에게 6개월 지급하는 게 전부였다. 신청자의 95%는 생계비 지원 없이 일도 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생계의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목숨을 걸고 자기 나라를 탈출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인간의 존엄은 절망적인 생계의 어려움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린다. 난민인권센터가 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검사에 의하면, 본국에서 당한 박해의 고통보다 한국에서 경험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생계의 불안정이 훨씬 큰 고통이었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그 상황은 심각하다. 

 

참여사회 2015년 11월호 (통권 228호)

# 장면 2.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어요.” 대법원까지 모든 난민신청 절차를 마쳤지만 최종 불허가 확정된 후 건네는 가장 하기 싫지만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돌아가면 죽어요. 체류가 불법이고 언제든 단속되면 추방되는 줄 알지만 그 순간까지라도 한국에 남아있는 게 더 나아요.” 어떤 난민들은 한국 정부가 난민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본국에 남아있을 경우 당하게 될 박해의 두려움으로 귀국을 포기한다. 
“막막해요. 본국의 상황이 전보다 나아져서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지만 돌아간들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본인도 돌아가면 안전하다고 인정했으니 그럼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인도주의, 인권 그리고 난민



난민 발생국의 상황은 급격한 정치변동, 전쟁과 내전, 전통적 관습, 자연재해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 붕괴 등의 배경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민 개개인이 경험하는 비극은 인도주의나 인권적 관점에서 보면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그러나 난민협약에서는 모든 박해와 국가폭력의 피해자 전체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그리고 정치적 의견 이 다섯 가지 이유의 박해로 탈출한 사람만을 난민으로 정의하고 있다. 


난민을 심사하는 주체도 국가다. 난민협약에 가입은 했지만 난민 보호에 관심과 의지가 없는 ‘실패를 자초한 난민보호국’이 있다. 이런 국가들은 형식적이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에 따른 심사를 한다. 때문에 수많은 난민이 불인정 받고 박해가 예상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이런 국가들은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박해에 1951년 체결된 난민협약의 기준만을 곧이곧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4%의 인정률도 과분하다 싶을 때가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터전을 떠나는 이주의 원인은 정부의 부패, 국가 간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임금과 삶의 질. 더 나은 교육기회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박해의 우려는 줄었지만 여전히 비참하고 열악한 사회 경제적 환경이 예견되는 땅으로 절차에 따른 난민심사를 모두 마쳤으니 돌아가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장면 3.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여긴 한국이에요. 한국 사람들도 죽기 살기로 일해도 살아남기 힘든 곳이에요. 난민이라고 특별히 봐주는 것도 아니고, 기대도 하지 마세요. 살아남으려면 한국 사람보다 두세 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해요.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견디세요.” 

 

시민사회 성숙을 통한 난민 보호


난민단체 활동가로서 갖는 딜레마다. 나도 가끔은 한국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을 떠나지 못하니 이곳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적 삶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런 내가 난민들에게는 이 사회에서 자립과 정착을 권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조건 견디라는 말 대신 난민의 권리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난민협약은 난민에게 그 나라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과 동등한 법적지위와 권리를 보장하고, 일부의 권리는 그 나라의 국민과 동일한 권리를 가지도록 보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중 난민의 권리 수준이 최저의 수준이 된다는 이야기다.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난민발생 원인인 분쟁의 종식과 저개발 국가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통한 난민발생국의 안정이고, 둘째는 난민협약 개정을 통한 난민 보호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존재하는 한 난민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이 경우 타 국가에서 더 많은 수의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난민문제는 국가의 배타적인 국경통제 강화와 국가 간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해결이 요원하다. 


답은 각 국가의 시민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성숙한 시민사회가 자국의 난민 인정률과 난민에 대한 사회보장 수준을 높이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나아가 난민이 정착하여 자립할 수 있는 토대로서 인권친화적인 정부 구성, 경제민주화 그리고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 나라 국민이 살만한 국가가 아니라면 가장 취약한 난민은 더욱 ‘살아가기가, 생활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자국민의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한국정부가 난민의 안전까지 책임져 줄지, 손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을 보며 난민의 고용 안정은 얼마나 힘들지, 국민연금 개정안을 보며 난민의 노후는 답이 없겠지, 자문자답하며 이르게 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