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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난민법 만들고도 난민들 외면하는 한국

  본 글은 난민인권센터에서 기고한 글로 오마이뉴스 2015. 9. 17. 자 기사에 게재되었습니다.



한국까지 왔는데, '오늘 죽기로 결심했다'니...



아일란 쿠르디(아래 아일란)의 사진이 화제가 된 이후 수많은 관심이 난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내가 일하는 난민인권센터에도 지난주 내내 문의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사실 아일란의 사연이 알려지기 전부터 한국에는 이미 많은 난민들이 있었다. 2015년 5월 기준으로 총 난민신청자는 1만2208명, 인정자는 522명, 인도적 체류자는 876명이다. 독일에서는 난민을 무제한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EU에서는 난민쿼터제가 논의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난민 신청자들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가 자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많은 국가들이 자국민을 보호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국제사회는 국제적 보호를 제공하는 체계를 고안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개인이 타국에 비호를 신청하면 비호신청을 받은 국가가 이들에 대한 보호책임을 지도록 했다.

한국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1967년 의정서 체약국으로서 난민 보호에 동참할 의지를 표명하였지만 실상은 난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난민 보호 동참하겠다더니... 모른 척하는 한국

내가 난민인권센터에서 처음 발을 들였던 건 2013년 초였다. 당시 가장 큰 난민 이슈는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지인의 도움으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들이 불법으로 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리 단체에서 지원하던 난민 A씨가 단속에 걸렸다. 출입국사무소 유치장에 갇힌 그는 본국에서 당했던 고통스러운 고문의 기억을 떠올렸다. 다음날 자신을 찾아온 난민인권센터 국장에게 A씨는 "하루가 지나도 풀려나지 않으면 자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2014년 7월 1일 난민법이 시행되면서 난민 신청 후 6개월이 지나면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취업을 할 수 없는 6개월 동안에는 생계비를 지원한다는 근거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난민 신청자의 7%에게만 생계비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는 지인과 종교단체에 도움을 구걸하거나, 불안에 떨면서 불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난민 신청을 하더라도 1년 후에야 심사결정이 통지된다. 하지만 인정률이 4%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100명 중 96명은 불인정통지서를 받는다. 난민 인정 기준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해서 본국에서 고문을 당했거나 가족이 죽었다는 정도로는 박해의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 일을 하고 처음에는 난민들의 사정을 듣고 많이 울었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과 인정률이 별개라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난민 신청자들에게 "인정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꼭 당부하게 되었다. 

올 2월 공항에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을 받았다는 B씨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송환대기실로 찾아가 그를 만나니 자신이 왜 불회부결정을 받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소송을 제기한 후 B씨는 송환대기실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식사도, 수면도, 의료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하루는 위염 때문에 햄버거를 먹을 수가 없다는 B씨를 위해 혹 메뉴를 바꿔줄 수 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며 "송환명령을 받았으면 빨리 나가야지 왜 버티고 있느냐"라고 불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본국에 돌아갈 수 없는 난민이라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에게 B씨는 송환명령을 받고도 나가지 않고 버티는 입국거부자일 뿐이었다.

그가 공항에 머무른 지 어느덧 7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법무부에서는 B씨의 처우를 항공사에 떠넘길 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보호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은 국내 난민신청자 및 인도적체류자도 마찬가지다. 

올해 7월 기준 난민인정률은 고작 4.3%. 난민신청 후 첫 6개월 동안은 취업이 불가능한데 생계비는 고작 7%의 난민신청자들에게만 지원된다. 시리아 난민들 대부분은 인도적 체류 지위가 주어지긴 하지만, 취업에 제한이 있고,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으며, 위험에 처한 본국의 가족들을 데려오지도 못한다.

2년 전 내가 지원하던 한 인도적 체류자 C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인도적 체류자는 전문직종 취업에 제한이 있어 대부분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게 된다. 그러나 고용주들이 인도적 체류자에게 주어지는 G-1 비자를 잘 이해하지 못해 공장마저도 취업이 쉽지 않았다.

어느 날 C씨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어떤 내용인가 해서 보았더니 '오늘 죽기로 결심했다'는 유서였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C씨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우리 단체에서 빌렸던 돈을 갚지 못해 미안하다고, 꼭 갚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했다. 

너무 놀란 나는 우리 단체 국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와달라고 요청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떤 말로도 C씨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집에 가라는 그의 만류를 뿌리치고 곁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오신 국장님이 밤새 C씨의 곁을 지켰고, 안정을 되찾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국가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난민들의 얼굴

난민인권센터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각자의 '얼굴'이 있었다. 누군가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네 살 난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였으며, 사랑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엄마였다. 단지 그들의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을  뿐이었다.

아일란의 사진을 본 많은 이들이 슬픔과 분노를 터트렸다. 그것은 시리아 난민이라는 '이슈'를 아일란이라는 아이의 '얼굴'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수많은 '얼굴'들이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땅에도 존재하고 있다. 

현재 법사위에는 난민법 일부 개정안이 8개나 올라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통과가 불투명해 보인다. 슬픔이 단순한 동정에 그치지 않으려면 망자의 이름을 제도에 새겨 넣어 그 죽음을 진정하게 추모해야 한다.

(난민인권센터 류은지)

                                                                                                                                                      (사진 출처 : 연합뉴스)